자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
예전 어디선가 읽었던 글을 복사해봤던거라 정확한 출처를 적을 수가 없습니다…
한 밤에 잠이 안와서 컴터 앞에서 꿈툴거리다가 찾게되서 블로그에 올리게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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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1. 남자와 여자
어두운 골목길을 남녀가 걸어온다. 여자의 집 앞에서 멈춘다.
남자는 여자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려 한다.
둘은 헤어지기 아쉬운 밤을 보내고 있다.
그 때 여자가 말한다.
<봉팔씨, 저를 사랑한다면… 키스해주세요.>
남자는 키스를 하려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순심씨, 키스는 하겠지만, 아직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날 밤, 순심은 봉팔의 사랑을 확인 받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봉팔은 키스를 해봐야 사랑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순심에게 먼저 키스를 해보자고 했다.
순심은 사랑이 먼저라고 했지만, 봉팔은 키스가 먼저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사랑과 키스의 순서를 결정하지 못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사랑하면, 키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키스를 해봐야 사랑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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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나에게 사랑과 키스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사랑과 키스를 이야기로 꺼낸 것은,
모든 것의 순서에 너무 민감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어떤 사람은 반드시 사랑을 해야 키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순서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생각할 거다.
또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은 키스를 해봐야 사랑을 결정할 수가 있다고도 말할지도 모른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많은지는
당신이 몇 년도에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이다.
논리적인 사람일수록 순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논리를 생각할 때, 우리는 대부분 화살표를 생각한다.
가령, <사랑한다면 키스해주세요>는 <사랑 -> 키스>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화살표의 방향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생각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령, 우리가 삼단논법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A -> B 이고, B -> C 이면, A -> C 이다.
이런 화살표의 흐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을 화살표에 적용해보자.
A가 B를 사랑하고, B가 C를 사랑하면, A는 C를 사랑한다.
봉팔이는 순심이를 사랑하고,
순심이는 칠득이를 사랑한다면,
봉팔이는 칠득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앞의 말이 맞나? 결코, 그렇지 않다.
따라서, 화살표에 <사랑한다>와 같은 것을 넣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리학에서는 3단 논법이 성립하려면, 화살표가 추이성(transitive)이라는
성질을 만족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논리와
같은 것에 어설프게 대입하는 것은 옳지않은 결론을 만드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게임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게임은 학교에서 배우는 게임과 매우 다르다.
게임이 다르기 때문에 게임에 적용할 룰도 다르고,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학교에서 매우 어려운 논리와 같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는 어려운 논리를 적용할 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때로는 학교에서 배운 논리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것이 용이한 경우도 많다.
내가 요즘 느낀 것 하나를 소개한다.
학교에서 논리를 배울 때는 화살표의 방향을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
즉, A -> B 라고 해서, B -> A라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A -> B 인 것과 B -> A 인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보면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논리학 문제는 그렇게 생각해야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속에 부딛치는 많은 문제들은
A -> B 인 것과 B -> A 인 것이 별개가 아니다.
A와 B가 연관이 있으면 그 화살표를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가령, <강자의 여유>라는 말이 있다.
화살표로 표현하면, <강자 -> 여유>다.
만약, 당신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거꾸로 화살표를 그려보라.
<여유 -> 강자: 여유가 있어야 강자가 된다.>
나는 남녀의 사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고 호감이 가는 남녀는 자주 만난다.
화살표의 방향을 반대로 돌리면, 자주 만나는 남녀는 처음에는 서로 관심이 없었어도,
점차 좋아하게 되고 호감을 더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용은 당신이 생각하는 많은 문제들에 적용된다.
당신의 상황에 당신이 알고 있는 화살표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보라.
만약,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자의 모습을 찾아보라.
그리고, 성공했을 때, 하고 싶은 모습을 거꾸로 화살표를 돌려서 미리 해보는 것이다.
가령, 당신이 부자가 되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많은 기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리 기부를 해보라. <부자 -> 기부>의 화살표를 <기부 -> 부자>로 바꿔보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기부를 했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모습은 당신에게 그것이 필요하고 좋다는 것을 강하게
알려줄 것이고, 당신이 당신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이미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나는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선언하는 것이 자신에게 성공과 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내가 실패할 것 같다. 이번 게임은 왠지 불길하다.>는 생각은
자신에게 실패와 불길함을 가져다 준다.
당신이 최고가 되려면,
일단 당신이 최고가 되었다고 미리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해보라.
원인과 결과의 화살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이야기 2. 암소 아홉 마리.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가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불편할 뿐 마을은 매우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목축과 농사를 주로 하는 이 마을에서 의사는 금방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고,
특히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향한 추장의 젊은 아들과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추장의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꿈을 지닌,
그야말로 장래가 촉망 받는 청년이었다.
당연히 혼기가 늦어진 청년의 결혼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결혼을 하려는 청년이 암소를 끌고 처녀의 집에 가서
장인 될 사람에게 <이거 받고 딸 주쇼> 라고 청혼을 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정말 훌륭한 신부감에겐 살찐 암소 세 마리를 주는데
이 <암소 세 마리>는 이 마을이 생겨난 이후로 단 두 사람 뿐이라고 했다.
좋은 신부감은 암소 두 마리를 받고, 보통의 신부감은 암소 한 마리를 받는다.
신부가 아름답고, 훌륭한 정도에 따라 암소의 개수가 결정된다.
어느날, 추장의 아들이 암소를 몰고 청혼하러 나섰다.
그런데, 암소를 자그마치 아홉 마리나 몰고 나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추장의 젊은 아들이 과연 어떤 여자에게 청혼하는지 궁금해 하며, 뒤를 따랐다.
아홉 마리의 암소 뒤를 따라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한참을 걷더니 추장의 아들은 어느 허름한 한 노인의 집 앞에 멈춰 서서
암소 아홉 마리의 고삐를 집 기둥에 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청년이 청혼한 노인의 딸은 말라깽이에다가 키가 너무 크고 병약한 외모에다가
마음까지 심약해서 늘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자기 그림자만 보아도 깜짝 깜짝 놀라곤 하는
전형적인 염소 한 마리, 기껏해야 두 마리짜리 처녀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미쳤다고 수군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렸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다.
친 형제와 같이 지내던 추장 아들의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그 의사는 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청혼만을 보고, 추장의 아들에게 결혼식 잘하고, 잘 살라는 인사말만 남긴 후
본국으로 돌아온 의사는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그 마을에 휴가를 가게 되었다.
의사는 세월이 흘러 마을의 추장이 되었을 그 청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들처럼 그들의 만남은 반가웠다.
그런데, 그 집에서 그 의사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을 봤다.
의사는 많은 여자를 보아왔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흑인 여인을 본 일이 없었다.
우아한 자태와 유창한 영어,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까지,
완벽한 여자가 있다면 이 여자다 싶을 정도였다.
의사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추장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 처입니다. 저 사람이 그때의 그 심약했던 처녀입니다.”
“네!! 정말로요?” 의사는 아연실색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의사를 바라보면서 젊은 추장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맑고 고운 눈동자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저 사람과의 결혼을 꿈꿔 왔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에선 청혼의 관습 때문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여자들의 세계에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스꽝스럽다 여겼지만 그런 관습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저도 청혼을 위해선 암소를 몰고 가야만 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한 마리의 암소면 충분히 혼인 승낙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청혼의 순간에 몇 마리의 암소를 받았느냐가
평생의 자기가치를 결정 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사무치는 제 소중한 감정입니다.
저는 제 아내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의 암소 값에 한정 하고
평생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세 마리를 선물하면 그 옛날 세 마리를 받았던 훌륭했던 사람들과 비교될 것이고,
그러면 제 아내는 또 움츠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저는 세 마리를 훨씬 뛰어넘는 아홉 마리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처음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 때문에 무척 놀란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고 제 사랑의 진정함을 느끼게 되자
아내는 아홉 마리의 암소의 가치가 과연 자신 에게 있는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후로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았습니다.
항상 저의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공부를 하거나 외모를 꾸미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이야기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점점 더 아름다워져 갔습니다.”